닐 디그래스 타이슨Neil deGrasse Tyson은 아홉 살 때 뉴욕 헤이든천문관을 처음 방문한 뒤 천체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. 그로부터 30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그는 이 천문관의 관장으로 임명됐다. 컬럼비아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타이슨은 이후 과학에 대한 열정을 라디오, TV, 트위터 등 여러 미디어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.
인터뷰어 앨리슨 비어드Alison Beard
HBR:본업과 방송 활동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십니까?
타이슨:우리는 균형의 가치를 너무 높게 잡고 있는지 모릅니다. 균형을 완벽하게 이룬 덕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인생이 역동적일 수 있을까요? 균형에서 벗어났을 때 보통 인생에 변화가 생깁니다. 그리고 그 변화가 항상 부정적이지는 않습니다. 저는 안주하고 있던 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.
실제로는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하세요?
‘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’는 철학과 약간 비슷합니다. 중요도에 따라 어떤 이메일은 아예 열어 보지도 않습니다. 그리고 자투리 시간들을 최대한 활용합니다. 전철을 기다리면서 이메일을 쓰죠. 시간이 좀 더 있다면 책이나 칼럼을 쓰고요. 그런 틈새 시간을 사용해 흘러간 인생을 얼마나 만회할 수 있냐고요? 모두 연결해 보면 그런 시간들의 총량은 생각보다 클 수 있습니다.
천문관과 <스타토크StarTalk> 쇼를 어떻게 이끌어 가고 계세요?
전 제가 남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. 학자로서 저는 아이디어에 반대 의견을 제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. 그렇게 하면서 상황이 어떤지, 혹은 어떻게 진행될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. 그리고 저는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합니다.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상사이기를 바랍니다. 교육자로서 저는 누군가가 실수를 했을 때 ‘내일은 네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게 도와 줄게’라고 말합니다.
어떤 사람들은 당신에게 과학자로의 삶을 그만두라고 설득하기도 했죠. 끝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.
헤이든천문관 지붕에서 우주를 처음 보던 날, 저는 우주를 탐구하는 데 제 인생을 바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. 어려움을 극복하고 제 나름대로의 힘을 지키기 위한 제 마음 속 ‘연료 탱크’의 용량이 얼마나 큰지 아마 짐작하기 어려우실 겁니다. 환상적인 달을 본 뒤 이 연료는 1갤런쯤 늘어났습니다. 처음 산 망원경으로 토성을 처음 봤을 때 마음 속 연료는 좀 더 늘어났습니다. 전 이런 마음 속 연료 탱크가 충분히 깊지 않아서 성공하지 못했던 수재들을 생각해 보곤 합니다.
현재 최고의 과학자와 기업들이 올바른 일에 주력하고 있나요?
역사를 보면 사람들이 자신의 호기심이 이끄는 삶을 추구할 때 위대한 발견이 있었습니다. 1920년대에 발견된 양자역학을 예로 들어 보죠. 당신이 그 당시에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. “왜 원자를 연구해? 원자는 볼 수도 없는데.” 하지만 40~50년 후 양자역학은 어림잡아 세계 GDP(국내총생산)의 3분의 1을 책임지는 IT 혁명의 토대가 되었죠. 저는 특정한 연구를 해야 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. 모든 미개척 분야를 지원하고 그것들을 함께 연결해야 합니다.